05 Sep “복지수혜 무섭다 내 이름 빼줘”
▶ 식품보조 프로그램부터, 메디캘까지 탈퇴 러시
▶ 영주권·시민권 탈락 우려
갓 100일 지난 아들이 있는 한인 정수현(가명)씨는 정부로부터 받던 ‘영양보조프로그램’(WIC) 혜택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비현금 복지수혜자까지도 영주권 취득을 제한할 계획이라는 보도 때문이었다. 남편이 취업비자 소지자인 정씨 가족은 조만간 취업 영주권 신청을 할 계획이다.
정씨는 “WIC로 우유, 쥬스, 시리얼, 빵까지 무상으로 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됐지만 포기하기로 했다”며 “우리는 WIC 자격을 갖추고 있어 부정수급은 아니지만 혹시 영주권 심사에서 문제가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영주권자인 한정수(가명)씨는 고민 끝에 현재 받고 있는 ‘메디캘’ 수혜를 받지 않기로 했다. 시민권 심사에서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황씨는 “메디캘을 중단하면 당장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시민권을 먼저 취득한 이후에 메디캘 신청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메디캘 신청을 대행해줬던 한인단체에 지난 달 찾아아 “메디캘 프로그램에서 우리 가족 이름을 모두 빼달라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메디케이드, WIC, 푸드스탬프 등 비현금 공공복지 수혜자까지 영주권 또는 시민권을 제한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새 정책(본보 8월 27일자 보도)이 이민자 커뮤니티에 일파만파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아직 새 정책은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거나 확정되지 않았지만 시행 가능성이 커지면서 신분문제를 우려한 이민자들의 탈퇴 요구가 가 잇따르고 있다.
정씨와 같은 비이민비자 소지자들은 영주권 취득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한씨와 같은 영주권자들은 시민권 심사에서 복지수혜 전력이 행여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탈퇴를 서두르고 있다.
불법체류 신분 이민자들의 두려움은 훨씬 더 하다. 미국 태생 자녀를 두고 있어 WIC 혜택을 받고 있는 불체자들은 추방 타겟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4일 트럼프 행정부가 입안 중인 새 정책이 이민자 커뮤니티를 패닉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 정책이 복지수혜자의 영주권 취득 등 이민혜택을 제한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탈퇴자가 크게 증가했고, 신청을 아예 포기하는 이민자들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주 비컨시의 경우, WIC 가입자가 최근 20% 이상 줄었고, 텍사스주 롱뷰의 한 기관은 최근 매월 90여 명씩 탈퇴신청이 들어오고 있다.
메디캘 신청을 대행하는 한인단체들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웃케어클리닉(KHEIR)의 경우, 최근 4개월간 메디캘 등 저소득층 건강보험 가입자가 30%나 급감했다.
한 한인단체 관계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 탈퇴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한인들도 있다”며 “정책이 확정되지 않아 이들의 탈퇴를 말릴 수도, 탈퇴를 권유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김상목 기자>